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고 한동안 지적 충격과 혼돈을 겪게 되었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닌 '수 십권'의 경제서적을 읽은 듯한 지적 무게감이 나의 단촐한 경제 지식 그물을 너무도 쉽게 뚫고 '꽝~'하며 주저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 '슝~'하니 날아가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리...)
감히 나로써는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23가지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너무도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부분에도 조심스럽게 한 문장 한 문장 정독하게 되었다.(사실 지적갈증에 한 문장도 놓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나의 지적 우물을 채우기에 너무나도 양질의 서적이었으메...)
장하준 교수는 그동안 너무도 만연해있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각종 통계자료와 설득력있는 논리로 독자들로하여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으며, 한나라당에서조차 교수를 초빙하여 강연을 하기도 했으니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고 볼수도 있겠다.)
23가지의 이야기거리 중 일부 언급해보자면,
특히 [thing 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유)시장경제를 언급할 때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간섭만을 해야한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경제시스템의 탄생이 '인간의 정치적 합의'라는 근본적 태생을 간과해선 안된다. 또한 수많은 규제 속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라는 틀로 많은 부분에서 허울뿐인 논리를 내세우며 경제학적 위상을 공공히 하려하나 그러한 행위 또한 정치적 의도의 '또다른 표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thing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매우 신선했던 'thing'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IT기술 발전으로 인터넷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기때문에 어느 누가 감히 인터넷의 사회적 위상에 흠집을 낼 생각을 했겠는가.(어느 논문이든 칼럼이든 IT기술의 발전이니 인터넷의 발달이니 하며 시대적 흐름을 설명하지 않던가.)
장하준 교수는 그런 자부심이 인터넷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찌보면 과거의 제조업 대표주자였던 (그럼에도 요즘에도 가정에서는 꿋꿋히 자리를 잡고 있는 마지막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세탁기가 그런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꿔놓았다니...
세탁기의 등장은 많은 가사노동을 줄어주며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럼에도 인터넷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실제 여가적 측면(웹서핑, 인터넷을 활용한 가벼운 정보검색 등)에서 더욱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듯한 인상이 강하다. 더욱이 생산분야에서 세탁기와 같은 혁명적인 능력발휘는 하지 못하고 있는게 불편하지만 사실 아니던가.(IT기술 종사자들이 이부분에 매우 민감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속도면에서 전보에 비해 크게 향상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상당히 신선하다. 전보의 속도향상에 비해 인터넷의 속도향상은 크게 뒤지고 있기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꼭 읽어보시길...)
너무나도 최신 것에 대한 환상(?)과 최신 것에 대한 관심으로 과거의 것들이 많은 부분 그들의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게 현실이다. 장하준 교수는 thing 4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경제 정책을 올바르게 입안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고, 개인 차원에서는 직업 선택 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의 것에만 사로잡혀 이제는 보편화된 것들은 저평가할 경우 과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러가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중략) 일견 도발적인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기술력이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p68)
[thing 7.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대통령의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달러의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 중 10달러 지페에 나오는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대통령이 된 적도 없으며, 다른 지폐의 등장인물들에 견주면 경력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 없는 초대 재무 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면을 잘 들여다 보면 그의 업적은 과히 미국 사회에서 특히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에게는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밀턴은 현대 미국 경제 시스템을 설계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The Report on the Subject of Manufacture]을 통해 보호 무역주의적 주장을 펼쳤다는데 핵심이 있다.
선진국들이 마치 자유시장 정책으로 지금의 위치에 권력(?)을 쥐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들의 논리에는 너무도 허점이 많이 들어난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은 사회적, 문화적 외부환경을 배제한 일방적인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을 한 그들의 행위에 반박 아니 몸부림 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그런 사회다. 국가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지극히 극단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그들은 역시 꿈쩍도 안할테지...흠...)' Money talk~!
보호주의로 성장해온 그들의 과거는 뒤로하고 금융위기니 뭐니 하는 시스템 오작동이 내재되어있는 시스템을 업데이트 시켜준다며 현혹하는 그들의 자태에 정말 치사하기 그지없다.
[thing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 흐름을 이야기 할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탈산업화이다. 마치 제조업은 사향산업이고 서비스만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여 집중해야할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모양새다. 선진국은 물론이요 개발도상국 또한 서비스산업이 정답인양 금융허브니 뭐니 하면 너도나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장하준 교수는 탈산업화의 모습이 제조업의 수요감소가 아니라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서비스업의 상대적 가격 증가로 인한 착시현상이라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본질적으로 생산성이 제조업에 비해 느리고 교역하기에도 어려운 성질을 내포하고 있으며, 첨단 지식기반 서비스 또한 제조업의 기반없이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직업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 사회에서도 금융권으로의 취업을 많은 구직자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지원하고 있다. 이제 제조업 분야는 사향산업이라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런 기반시설의 투자는 생산성 향상의 결과를 보면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루어져 왔다.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착시현상에 나 또한 부끄럽게 제조업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 ....(중략) 탈산업화 현상이 꼭 제조업의 쇠퇴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그런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 현상이 장기적인 생산성 증가와 국제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p141)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생일 때 경제학 모 교수님께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당시 요즘처럼 등록금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때였다.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에 관해 언급을 하시면서 경제학에 흔히 나오는 파이 조각을 이용하셨다. 물론 핵심은 간단하다. 파이가 커져야 분배의 파이도 커진다고...
당시 나도 그에대해 반신반의하면서 상당 고심한 기억이 난다. (아마 대부분의 경제학 교수들의 논리가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분들또한 그렇게 배워왔으니...)
장하준 교수는 트리클다운 경제학으로 잘 알려진 이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실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 맡겨 두면 미미한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에 대한 서민들의 피해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요즘 친기업이니 뭐니 하면 기업에 관한 규제에 상당히 너그럽다.(최근 법인세 감세 철회의 한나라당 당론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특정 정당의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정권이든 정권유지를 위해 기업과의 유기적(?) 관계를 맺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이니...
그런 정책들의 논거로 '성장을 해야 분배를 하지'라는 생각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분들도 여전히 계신다.
장하준 교수는 커진 파이를 부자들에게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들은 받고나서 실제로는 파이가 커지는 속도를 줄어버렸다고 비판한다. 또한 부자들에 유리한 소득분배가 투자와 성장을 가속화시킨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음도 함께...
더욱이 장하준교수가 추구하는 국가관을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와 더불어 살짝 엿볼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중략)...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197)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기회의 균등은 그들이 말하는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는 기회의 균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균등까지 언급한다. 이는 단순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그들의 논리에 일침을 가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나 또한 기회의 불균등에 사로잡혀 '기회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과의 불균등에서 비롯한 결과물일 줄이야. 너무도 당연한 귀결인데 thing 20 을 통해 다시금 나의 지식 창고를 뒤적 뒤적 해보게 된다.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의 모습은 '그들'의 고도 전략(?)으로 어쩌면 실험실 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 서적이 나온 이후로 많은 지식인들이 많은 논쟁을 펼쳤고, 지금도 앞으로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 기로에 서있는 위치에 어느 방향으로 키를 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 전반적인 문제이기도하다.
장하준 교수로 인해서 상당한 지적 신선함을 느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비판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오히려 더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이 말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 기조의 순환(Circle)이 변하고 있는 역사적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든다. 큰 정부, 작은 정부, 큰 정부, 작은 정부처럼 이제는 큰 정부의 흐름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지 않나하는 그런 생각말이다. ( 정말 저자가 말하듯 이제 불편해질 때가 온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이 신봉해왔던 기조의 변화에...나는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 처야할테니...^^;;)
책 맨 앞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200년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전에 여자가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50년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 해야합니다. 장하준.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안을 위해 이야기해야한다는 문구가 상당히 와닿는다.
그들이 불편해도 설령 누군가 한 편이 불편해도 보다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대안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읽는 내내 나의 지식 창고를 여러번 뒤치닥 거리는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주었다. 그럼에도 그런 불편함이 그들의 불편함보다 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