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성스러운 곳,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년)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임재왜란(1592년)때 호남을 범하지못하여 승전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적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의 마수를 뻗쳐
전라도를 침공키 위하여 적의 우군은 진주성을 좌군 5만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장군이 이끄는 1천여의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적은 8월 12일 남원에 당도하여 성을 겹겹이 포위하였으며
13일부터 16일 밤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성민 6천여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혈전분투하다가 장열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이하생략)"
- 만인의총 기념관 내 '만인의총 연혁' 중 -
사적272호 만인의총을 방문했습니다.
다소 과격한(?) 봄바람이 급격히 불어난 저의 체중을 실감케 해주려는 듯 제 주변을 맵돌지만
그들과 화해함과 동시에 경건한 마음으로 만인의총에 들어섭니다.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얼이 서려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지날 때면 숙연함에 옷깃을 저밀곤 합니다.
만인의총을 보호하기 위해 마치 낮은 포복자세를 취하는 듯
그리 높지 않은 왕재산이 엄숙함을 더하네요.
왕재산 산행기는 http://kairos2009.tistory.com/212 을 클릭!!!
만인의총 안내도입니다.
만인의총이 가장 뒤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네요.
사실 만인의총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위치와 다르다고 합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만인의총을 방문하셨는데
당시 어찌나 허술하고 피해를 많이 받았는지 이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1964년 당시 남원시·군민들이 현재의 위치 '남원시 향교동 636번지'로
이전하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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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문 |
성인문 |
만인의총까지 가려면 두개의 문을 지나야 합니다.
충의문과 성인문을 지날 때마다 점점 심장박동수가 높아져요.
마치 죄지은양....
충의문 앞에 '경건'이란 글자는 '만인의총'이 가지는 의미를
더욱 되새기도록 만듭니다.
성인문을 지나 충렬사에 이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향을 피울 수 있는 곳이죠.
사진 왼편에는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각종 행사시에 나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지킴이랍니다.
매년 9월 26일이 되면 호국정신의 위업을 선양하고 충절의 혼을 기리기 위한
제향행사가 실시되기도 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선조들의 거룩한 얼을 가슴깊이 되새겨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사생·백일장대회를
이곳에서 개최하기도 한답니다.
<글짓기 및 그리기 대회 모습_전라북도 만인의총관리사업소 홈페이지>
<제향행사 모습_전라북도 만인의총관리사업소 홈페이지>
만인의총 비석이 보입니다.
이렇게 '만인의총'을 옆에서 잘 보필하고 있었군요.
좀 더 날씨가 풀리고 따뜻해지면 이곳의 잔디들이 녹색물결로 가득차겠죠.
잠시 다시한번 숙연해집니다.
만인의총 한켠에는 기념관이 있는데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그림들과 유물들을 전시해놓고 있는 곳입니다.
크진 않지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교육 공간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치열했던 모습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편 상단 쪽에 낫과 곡갱이 등을 들고 싸우는 민간인의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고,
처참하게 쓰러져가는 군사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네요.
마지막으로 당시 남원성 주변을 나타낸 지도가 눈에 띄어 한 컷 찍어보았습니다.
오른쪽 상단에 교룡산성이 보이고,
좌측에는 현재 터밖에 남지 않은 만복사도 보이네요.
제가 근무하고있는 사무실은 정확치는 않지만 남원성 서문 부근인듯 싶습니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남원성벽은 남문의 것으로 혼자 추정해봅니다...
음....방향상...그렇다는 것이지요.
남원성벽의 현재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다음을 클릭!
http://kairos2009.tistory.com/25
만인의총은 무료입장으로 넓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남원을 오시면 춘향이와 이몽룡만 찾지마시고
만인의총도 챙겨주시는 센스~ 잊지 마세요!![새세꿈]